빌리 홀리데이(Billie Holiday)

역대 여성보컬 중 3대 디바(Diva)

빌리 홀리데이가 공연 때마다 빠짐없이 불렀던 곡 ‘I'm a Fool to want you’ 카페에서도 많이 나온다. 하지만, 그녀의 감성에 젖은 보컬과 달리 그녀는 일생 전체를 불행하게 살다가, 불행하게 간 사람이다. 빌리 홀리데이의 본명은 일리노어 페이건(Eleanora Fagan)으로 1915년 4월 7일에 미국 메릴랜드 주 볼티모어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조부모들은 '흑인 노예' 였다. 일찍부터 양쪽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빌리는 외가에서 외로움과 학대속에서 자라며 불행한 유년기를 보내야만 했다. 그나마 할머니가 빌리를 많이 예뻐했으나 그 할머니도 일찍 돌아 가셨다. 그리고 열 살이 되자 돈벌이에 나서야만 했다. 이 때부터 노래듣기를 좋아해서 축음기가 있는 집으로 일 나가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어느날 마흔살 가량의 백인 남자 딕크의 집에서 일을 해주고 있었는데, 빌리는 이 남자에게 크리스마스 이브에 성폭행을 당했다. 빌리는 경찰에 신고하지만, 오히려 불량소녀로 몰려 1925년에 수도원 ‘선한 목자의 집’으로 넘겼는데 13세에서 19세까지의 흑인 소녀를 갱생하는 시설이라고 하지만 '감화원'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었다.

 

▲ 젊은 시절의 빌리 홀리데이
▲ 젊은 시절의 빌리 홀리데이

2년 뒤, 어머니의 도움으로 감화원에서 나오지만, 얼마 후, 한 흑인남자로부터 또 한번의 성폭행을 당하게 되었다. 이 후 어머니는 빌리를 데리고 뉴욕으로 이주해서 정규교육을 받게 되지만 그녀의 최종 학력은 초등학교 5학년, 경제난에 시달리다 못해 결국 뉴욕 할렘에서 몸을 파는 여자로 전락하고야 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손님과의 관계를 거부하다, 결국 밀고를 당해 경찰로 넘겨졌고, 빌리는 불과 15살의 나이로 두차례의 철창행을 지내게 되었다.

몹시 추운 어느 겨울 밤, 밀린 방세를 마련하지 못하면 다음날 쫓겨난다는 절박감을 안고 발길 닿는 대로 거리를 걷고 또 걷다가 할렘가의 ‘포즈와 제리즈(Pod's & Jerr's)라는 나이트클럽에 도착하게 되었다. 이 곳에서 댄서라고 속이고 춤을 춰 보이지만 오히려 지배인에게 욕만 먹게되고, 그러자 이를 보던 피아노 연주자가 장난삼아 노래를 해보는 건 어떠냐고 제안하는데, 이 것은 빌리에게 엄청난 기회가 된다. 피아니스트는 ‘Trav`lin All Alone' 이라는 곡을 연주했다. 평소에 이 곡을 알고 노래를 좋아했던 빌리는 반주에 맞춰 노래를 시작하였는데, 그 목소리는 사람의 폐부를 찌르는, 온 마음과 몸을 울리는 처절한 비명과도 같은 음색의 노래였다고 회상되었다.

 

▲ 클럽 시절의 빌리 홀리데이
▲ 클럽 시절의 빌리 홀리데이

마치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홀 안의 사람들은 그녀의 노랫소리에 일제히 하던 일을 멈추고 조용히 노래를 듣기 시작했고, 노래가 끝났는데도 꿈같은 정적은 한동안 계속되었다고 한다. 어느 자리에서는 술잔을 앞에 놓고 소리 없이 눈물만 흘리는 사람도 있었다는데, 이윽고 꿈에서 깨어난 듯 우렁찬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녀가 부른 것은 노래였지만, 사람들은 가슴을 울리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감동이었던 것이었다. 그날 밤 피아니스트와 반으로 나눈 그녀의 팁은 57달러나 되었다. 훗날 그녀가 감회하기를,

 

“나는 뒤 늦게 그런 분위기를 감지했다. 모두가 조용히 내 노래만을 듣고 있었다. 만약 그때 누군가가 핀이라도 하나 떨어뜨렸다면 그건 마치 폭탄이 터지는 소리 같았을 것이다.”

 

▲ 빌리 홀리데이 - Lady Day [LP] 앨범
▲ 빌리 홀리데이 - Lady Day [LP] 앨범

그 노래 한 곡으로 흑인 거리의 여자 일리노어 페이건은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가수 빌리 홀리데이로 다시 태어났다. 주급 18달러짜리 나이트 클럽 가수로 무대에 서게 된 것이다.

이 때부터 제대로된 이름조차 없었던 그녀는 ‘엘리노어 페이건(Eleanora Fagan)’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당시 좋아하던 배우 ‘빌리 도브’와 아버지의 성인 ‘홀리데이’를 따서 ‘빌리 홀리데이’라 예정을 정했다. 언제나 머리에 새하얀 치자꽃을 달고, 목소리가 아니라 온 몸으로 노래하는 가수 빌리 홀리데이는 단번에 재즈 팬들의 마음을 사로 잡았다. 당시 도도하기로 유명했던 빌리는 손님들이 던져주는 팁은 줍지 않았는데, 이유는 허리를 숙여서 돈을 주우려면 가슴이 다 보이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동료들은 그녀가 무슨 요조숙녀 라도 되는냥 농담 반으로 부른 것이 그녀의 닉네임 ‘레이디(Lady, 숙녀)'의 시초이다. 후에 어느 돈 많은 손님이 이런 빌리의 모습을 보다 못해서 손에 직접 팁을 쥐어주었는데, 이후 모든 손님들도 빌리 홀리데이만큼은 이렇게 손에 직접 쥐어주었다고 한다. 꼿꼿히 허리를 펴고 무대 위에 선 그녀의 자태는 몹시 품위 있고 우아한 데다 기품이 넘쳐 ‘레이디 데이(Lady Day)’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기품있는 숙녀 빌리 홀리데이'라는 의미의 이 별명은 시련과 고난 속에서도 담담히 예술혼을 펼치던 그녀를 위한 찬사와도 같은 것 아닐까?

 

▲ 타임(Time)지에 사진이 실린 최초의 흑인
▲ 타임(Time)지에 사진이 실린 최초의 흑인

무대 위의 빌리 홀리데이는 모든 사람의 사랑을 받는 가수였다. 그러나 무대 아래로 내려오면, 당시 분위기상 가혹한 인종 차별 속에서 빌리 홀리데이 역시 당시에는 일반적인 흑인에 지나지 않았다. 그녀는 무대에 오르기 전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뒷문으로 클럽을 드나들어야 했으며, 무대 위의 그녀를 보며 연호하던 백인 재즈 팬들도 무대 아래의 그녀에겐 싸늘한 시선을 보냈다.

고통스러운 삶을 잊어 보려고 남편들을 따라 시작한 약물은 빌리 홀리데이의 건강과 영혼을 잠식해 들어갔다. 카네기 홀에서의 연주, 재즈 비평가상 수상, 최고의 음반 판매 등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의 이면에서 빌리 홀리데이는 천천히 죽어 가고 있었다. 직접적인 것은 약물과 알콜 중독이었지만 그녀의 삶을 돌아보면 가혹한 인종차별과 가난, 그리고 외로움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봐도 될 것 같다. 건강 상황이 악화되자 그녀는 더 이상 공연을 할 수도 없었고, 노래를 부를 무대도 점점 사라져 갔다. 화려한 가수의 명성 대신 다시 지독한 외로움과 가난이 빠르게 그녀를 짓눌렀다.

 

▲ 거친 머릿결을 숨기기위해 항상 머리에 치자꽃으로 치장을 했는데, 이는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다.
▲ 거친 머릿결을 숨기기위해 항상 머리에 치자꽃으로 치장을 했는데, 이는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다.

빌리는 사망하기 직전 레이디 인 세틴(Lady in Satin)을 녹음하고, 1959년 뉴욕 공연을 마지막으로 쓰러져 뉴욕 메트로폴리탄 병원에 입원했다. 그녀는 이미 온몸이 망가진 상태였 고, 그녀의 친구들이 놀라 병원에 입원시키려 했지만, 그녀는 거부하고 공연을 강행했다. 그녀의 죽음에는 여러 가지 설이 존재하지만, 의료진들이 약물에 찌들은 중년 흑인 여성을 아무도 빌리 홀리데이라고 알아보지 못했을 정도라고 할 정도였다. 1959년 7월 15일 본명 일리노어 페이건이라는 이름표가 붙은 딱딱하고 차디찬 병상에서 빌리 홀리데이는 역시 외로운 마지막을 맞이했다. 지금으로 치면 아주 이른 나이 44세 였다. 간경변과 신부전 증이 사망의 주요 원인이었으며 진료 기록에는 ‘병명 약물 중독 말기, 치료 방법 없음’이라고 쓰여 있었다고 한다. 그녀가 이혼소송중인 남편 루이스 맥케이에게 남긴 것은 1,345달러였다. 그러나 빌리 홀리데이가 사망하고 그의 앨범들이 팔리면서 불과 5개월 후인 1959년말에는 저작권료만 10만 달러가 넘었다.

 

▲ 빌리 홀리데이 - Lady in Satin 앨범. 빌리 홀리데이가 사망하기 1년 전 녹음한 마지막 앨범
▲ 빌리 홀리데이 - Lady in Satin 앨범. 빌리 홀리데이가 사망하기 1년 전 녹음한 마지막 앨범

재즈 역사상 가장 위대한 목소리로 일컬어지는 빌리 홀리데이.

그녀는 영감에 넘치는 목소리는 끊임없이 차별없는 자유를 염원했고, 그녀의 곡 해석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것이었다. 빌리 홀리데이의 노래 속에는 그녀의 처절한 삶이 있었다. 그러기에 그녀의 목소리는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아우라를 풍기며, 지금도 사랑 받고 있으 며, 지금까지도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영혼의 노래로 남아있다.

 

 

▲ 빌리 홀리데이 생전 모습
▲ 빌리 홀리데이 생전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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