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란, 상상력을 구체화한 마음의 표현이고 마음은 영혼의 통로잖아요.
영혼을 구속할 수 없는데 어찌 예술에 검열이 있겠어요.
“예술의 본질은 자유로움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안녕하세요. 임현정 님. 레전드매거진에서는 벌써 두 번째 만남이네요! 어떻게 지내고 계시는지 근황을 말씀해 주세요.
잘 지내고 있었습니다! (웃음) 언제나처럼 계속 연습하고 청중과 소통하며 지냈는데요. 지휘자로 첫 무대에 오르거나, 콘서트와 투어를 다녔고, 세미나에서 학생들과의 만남도 떠오르네요. 한국에 와서 너무너무 행복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지난해, 20여 년이라는 긴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셨습니다. 스위스에서의 활동은 잘 마무리하셨나요?
하하, 그게 사실… 귀국을 위해 한국을 방문한 게 아니라, 잠깐 쉴 생각으로 돌아온 거였는데 코로나로 발이 묶이게 돼버렸어요. 물론 한국은 언젠가 돌아와야 할 나의 고향이라 생각하고 있었어요. 다만 그 날이 이렇게 빨리 다가올 줄은 몰랐을 뿐이죠.

예상치 못한 귀국이 되어버렸는데, 돌아가지 못하는 아쉬움은 없나요?
제 음악적 여정이 전부 그곳에 남겨져 있잖아요. 친구도 많고, 깊은 소통을 나눈 청중과 독자도 그곳에 있죠. 또 사회적 활동에도 많이 참여하고 있었거든요. 시민 투표로 받은 상도 있고, 계획해 둔 여러 활동이 많았는데… 그런 게 되게 아쉽죠.

한편으론 그런 활동을 한국에서도 하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걸 이루고 있는 지금의 상황이 너무 행복해요. 예전엔 해외에 거주하며 한국에 투어를 왔다면 이제는 한국에 거주하며 해외 투어를 다니려 해요. 충분히 할 수 있어서 상황만 나아지면 그렇게 하려고요.

자유를 찾아 떠난 모험

임현정이라는 인물을 알아가기 위한 첫 번째 과정으로 유학 시절 이야기부터 꺼내어 볼까 해요. 12살이라는 이른 나이에 그것도 홀로 프랑스 유학을 떠나셨어요. 한국의 클래식은 너무 좁다는 것이 그 이유였는데, 12살의 저를 떠올려보면 가히 상상조차 되지 않거든요. 대체 어떤 판단에서 그런 결심을 내렸는지 말씀해 주세요.
갑갑함이 컸어요. 저는 모든 면에서 자유로운 걸 좋아하거든요. 연주에 있어서도 다양한 해석과 변화를 추구하는데, 틀에 짜여진 형식, 고정관념에 갇혀버린 연주가 룰이 되는 것이 도무지 납득이 되질 않았어요.

만약 국악을 이해하고 싶다면 본고장인 한국에서 배우는 게 순리잖아요. 마찬가지로 클래식을 깊이 흡수하기 위해선 본토에서 배우는 게 필수적이라 생각했어요. 파리를 선택한 이유는 모리스 라벨, 클로드 드뷔시, 카미유 생상 같은 위대한 거장이 공부했던 파리 음악원이라는 전설적인 장소가 있기 때문이었죠. 그렇게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게 됩니다.

진정한 자유를 찾아 떠나온 프랑스, 타지에서의 유학에 어려움도 있었지만, 음악을 배울 때만큼은 진정한 자유를 누리셨나요?
유학 시절 좋았던 점은 실력이 충분하고, 준비되어 있으면 월반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어요. 게다가 화성, 이론, 해석뿐 아니라 문화나 역사적 배경까지 다방면에서 음악을 이해할 수 있는 수업을 본토에서 배운다는 게, 진짜배기를 공부하는 것 같아 하루하루가 너무 설레고 기대됐어요. 하지만 매 순간 자유로웠던 건 아니에요. 어떤 교수님은 저를 통제하고, 일정한 형식 안에 가두려 했거든요. 너무 진저리가 나서 의견 충돌로 막 퇴학당할 위기에 처한 적도 있고. (웃음)

어째서 베토벤인가

그 시절 현정 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라면 단연코 베토벤일 것입니다. 어떤 경험이 그와 친해지게 만들었나요?
그 당시 저는 독서광이었는데요, 프랑스엔 뛰어난 작곡가를 소재로 한 책이 굉장히 많이 있었어요. 라벨이나 도스토옙스키 전집, 드뷔시가 직접 쓴 음악 평론 자료, 심지어 쇼팽이 주고받은 편지를 모아둔 전집도 있었죠. 창작자의 일생을 살펴보고 그들이 처한 상황, 주변 환경, 곡을 쓰게 된 목적과 배경을 알아가는 과정은, 음악을 듣고 선율의 아름다움만 감상하는 게 아니라 음악적 해석과 그 안에 담긴 메시지를 통찰하는 길을 열어 주었어요. 연주자와 청자가 아니라 저자와 독자로 만나는 경험은 그들의 영혼을 똑바로 들여다보는 것 같은 생생한 교류였죠.

그러다 발견한 인물이 바로 베토벤이에요. 그 시절의 저는 그야말로 베토벤 스토커였죠. 자유와 평등, 인간의 존엄을 주장한 베토벤의 이야기가 크게 와닿았거든요. 베토벤도 자신을 진정으로 이해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고 하는데요, 어쩌면 그런 점에서 동질감을 느껴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어요.

베토벤의 이야기 중 어느 구절이 가장 와닿았나요?
베토벤이 자신을 무시하던 왕자에게 편지를 남겼는데요. ‘왕자는 과거에도 많았고, 앞으로도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베토벤은 단 한 명뿐 입니다.’라는 내용이었어요. 왕자는 지위와 대우를 타고나지만, 베토벤은 자신의 노력으로 쟁취한 결과잖아요. 제가 인종차별로 힘들어할 무렵, 베토벤이 건넨 메시지가 큰 위로가 되었답니다.

나의 첫 번째 언어, 피아노

현정 님을 대표하는 개성 중 하나는 악곡의 자유로운 해석에 있어요. 때로는 우리가 알고 있는 익숙한 멜로디조차 현정 님의 손길을 거치면 새로운 메시지로 거듭나는데요, 사실 클래식에 파격적 해석을 곁들이기가 쉽지는 않은 일이잖아요. 오리지널리티와 세간의 평가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을 후학을 위해 조언을 주신다면?
만약 스스로의 작품에 감동 받았다면, 아름답다는 확신과 최선을 다했다는 열정이 있다면, 두려움을 갖지 말고 당당하게 자신의 것을 세계에 공표하세요. 수많은 의견이 오가겠죠. 비판이나 비난이 뒤따르겠지만, 중심을 잃지 말고 계속해서, 진정으로 추구하는 아름다움을 쫓으세요. 나무도 가뭄이 올 때 뿌리를 더 깊이 내린다 해요. 땅 밑에 물을 찾기 위해서. 가뭄을 겪은 나무는 뿌리가 훨씬 튼튼해진다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독창적인 자신의 언어를 발견하기 위한 팁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만약 전통이기 때문에 따르거나, 누군가의 요구에 의해 연주하는 상황이라면, 그것은 전통이 연주를 하는 것이고,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나의 손을 통해 전달되는 것이잖아요. 거기에 진정성이 있을까요? 진정한 나의 연주, 내 영혼의 소리가 발현되기 위해선 그 어떤 눈치도 보지 않고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모든 억압에서 벗어나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여 보세요. 그것이 당신의 개성이에요. 개성은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 세상 70억의 지문이 모두 다르다고 해요. 심지어 하늘에서 내리는 눈 결정체의 모양도 모두 다르고요. 음악도 마찬가지죠. 매 순간 똑같은 게 없어요. 그러니 우린 그 자체만으로 유니크한 존재들이에요. 개성은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것이에요. 자신의 소리를 인정할 때 그것은 개성이 될 것입니다.

관객의 마음에 닿는다는 것

오늘날 천재 피아니스트라 불리는데 이러한 별명에 대해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우선 저는 스스로 천재라고 생각하지 않고요. 뻔한 대답이지만 제가 천재라면 그건 99%의 노력과 1%의 영감으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해요. 좋아하니 열정을 가지고 꾸준한 반복으로 이뤄진 것이에요. 정말 별다른 건 없어요.

하지만 많은 이들이 노력의 과정에서 수많은 난관에 빠지고, 끝끝내 주저 앉고야 마는 경우도 많습니다. 피아노의 어떤 부분이 나를 그렇게까지 끌어당긴 것인가요?
제가 준비를 마치고 유학을 떠난 게 아니라 처음엔 소통이 어려웠어요. 그런데 피아노 앞에선 말이 통하더라고요. 그런 면에서 피아노는 나 자신을 표현해 주는 소통의 도구였어요. 동시에 그들에게 보여주고 말리라는 오기도 있었고, 음악의 아름다움이 선사하는 경외가 지친 제 영혼을 달래주었던 거 같아요.

공연을 준비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자신이 진정으로 살아 숨 쉬는 것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무대 위요. 무대 위에선 영혼 대 영혼의 소통이 펼쳐진다 생각해요. 공연을 앞두고 팬들과 인사하거나, 공연을 마치고 악수를 주고받으며 담소를 나누는데요. 그때는 우시는 분이 별로 안 계세요. 하지만 무대 위에선 제 손짓에 한바탕 웃거나 제 선율에 울음바다가 돼요. 특히나 우시는 분이 정말 많아요. 그 순간 언어를 초월한 영혼과 영혼의 마주함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무대 위에서 저는 살아있음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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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전드매거진 9월호 vol.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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